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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험 축적해 가야... 비정규직에 인센티브를
老子가 말했다 “큰 나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는 것과 같다”고
여시재는 작가이자 경영환경 전문가 김은환과 함께 대전환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체계’ 연구를 진행해왔다. 대전환은 손에 잡히거나 잡히지 않는 여러 곳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대전환을 통칭 디지털 전환이라 해왔다. 그러나 그 진폭은 이 말로 다 포괄할 수 없다. 이번 ‘가치 연구’도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식이 이번에 코로나19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질문을 더 근본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도대체 가치란 무엇인가? 과연 필요하기는 한 것인가? 문명의 전개, 지금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가치는 무엇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에 문제 제기라도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난 4월 26일 그 첫 편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분제’, 6월 7일 ‘이태원은 책임이 없다’에 이어 세 번째 편이다.
김은환은 조직이론 전문가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들어가 오랫동안 일했다. 경영전략실장과 산업전략실장을 지냈고 이후 책을 쓰고 있다. 2017년 ‘기업 진화의 비밀: 기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9년 ‘산업혁명의 숨은 주역들’을 썼다. 문명사와 산업사를 엮어 세상의 흐름을 보여주는 책들이다. |
동물은 항상
더 많은 칼로리를 선택한다
가치관이란 이 세상 모든 것에 좋고 나쁨의 점수를 매기는 척도다. 점수가 나온다는 것은 계산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동물의 선호를 결정하는 기준은 먹이, 즉 ‘칼로리’다. 동물들은 언제나 가장 많은 칼로리를 획득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도 칼로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 계산은 전적으로 칼로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먹방 열풍과 다이어트 중독이 공존하는 오늘날 과다 칼로리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기본 욕구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더릭 허츠버그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변수를 ‘위생요인’과 ‘동기요인’으로 나누었다. 칼로리를 포함한 의식주 관련 가치는 위생요인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포화되어 만족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옆 그림에서 역 U자형 곡선이 이것을 나타내고 있다.
늘 생존의 위기를 겪는 동물들은 다이어트 필요를 느낄 단계까지 가지 못하므로 칼로리라는 기준에 머문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 위생요인의 최고점에 도달한다. 따라서 인간은 칼로리를 버리고 소위 ‘동기요인’, 즉 성취감이나 자아실현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한다
한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소득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지만 국민의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감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먹고사는”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채워지지 않는 식욕’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없는 자는 경쟁에 밀려 과거와 다름없는 궁핍으로 퇴행한다.
왜 우리는 위생요인을 졸업하지도, 생존 가치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보다 모호하고 다의적인 또 하나의 가치 요인, 바로 ‘불확실성’을 다뤄야 한다.
격정의 근원은 ‘불확실성’
확실한 세상에서는 감정 고양이 있을 수 없다
자아실현의 영어 표현 중 하나는 self-express인데 express는 단순히 ‘표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면의 충동을 분출하는 것을 뜻한다. 기뻐서 환호하거나 슬퍼서 오열하는 것들이 모두 이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격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바로 ‘불확실성’이다. 모든 것이 확실한 세상에서는 감정의 고양이 있을 수 없다. 쳇바퀴처럼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는 세상에서 울고 웃고 감격할 일은 없다. 카지노에서 절망과 환희를 느끼는 것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싫다면 정해진 일을 하고 고정 급여를 받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확실성은 가치의 감점 요인으로 취급된다. 성과급 경쟁과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리는 번듯한 대기업을 떠나서 급여가 낮더라도 안정적인 공직을 선택하는 우수 인재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확실성이 싫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생요인에서 동기요인으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여유가 생기면 이러한 성향은 바뀌어야 한다. 불확실성도 칼로리와 같다. 넘치면 부담이지만 희소하면 가치가 된다.
그림에서처럼 칼로리는 가치 감소 영역에 진입했다. 이제 과다 칼로리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그런데 불확실성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사회가 성숙하면서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많이 완화되었다. 그 결과 불확실성은 이제 가점 요인이 된 것이다. 배가 부를 땐 다이어트 대상이던 음식이 배가 고파지면 다시 소중한 것이 되는 것과 똑같다. 불확실성은 이제 희소자원이다.
현금을 잔뜩 쥔 일론 머스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수하며
왜 ‘스페이스X’에 뛰어들었을까
불확실성을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과 기대로 맞이하는 사회가 선진 사회다. 페이팔을 매각하고 엄청난 현금을 손에 쥔 일론 머스크는 버뮤다로 은퇴하지 않았다. 그는 전기자동차와 초고속 지하터널, 그리고 우주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페이스X의 실험이 계속 실패하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었으며 이혼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페이팔 매각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버뮤다만으로 은퇴를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전쟁과 기아 넘어온 한국 현대사
불확실성이야말로 敵이라는
트라우마 만들어
한국 사회는 아직 불확실성을 가점 요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국 현대사의 출발점은 전쟁과 기아라는 불확실성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고난 속에서 살아남은 한국 사회는 집단적으로 불확실성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혔다. 이후 정치 경제 역량을 비약적으로 키웠지만,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했다.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치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채찍이 되었다.
결국 트라우마는 한국인의 내면에 뿌리를 내렸다.₁ 한국인들은 선진국 문턱에서도 여전히 불확실성 제로의 인생을 염원한다. “확실한 삶은 지루하다”고 경고해봐야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홍수 지옥을 겪은 사람에게 가뭄은 천국이다.
사자가 사냥에서 성취감 느끼는 것은
스무 번에 한 번, 5%만 성공하기 때문
그러나 인생에서 불확실성은 필수 영양소와도 같다. 우리가 게임을 즐기는 것은 적절한 불확실성에 자극받기 때문이다. 100% 성공하는 게임에서 재미를 느낄 수는 없다. 게임은 불확실성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사자는 사냥에서 스무 번에 한 번 꼴로 성공한다고 한다. 5% 정도의 성공률은 사자가 먹이를 잡았을 때의 성취감을 극대화시킨다. 사자가 영양의 목을 물었을 때의 효용이 큰 것은 5%이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은 인간이 불확실을 즐기는 쾌감 중추를 내장하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다. 희박한 확률 게임에서 성공한 쾌감은 너무나 강렬하여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타짜 되기보다 열 배 어렵다”₂ 는 말이 나온다. 어떤 가치든 일상 속에서 균형 있게 추구될 때에 제대로 기능한다. 오늘날 한국인은 일상적으로는 불확실성을 기피하면서 도박장에서는 불확실성에 과몰입하는 양극화 경향을 보인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학력과 시험뿐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과 관련하여 공정성 문제가 다시 한번 불거졌다. 공기업 입사 시험을 통과한 정규직과 비교할 때 중도 전환은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학력과 시험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태도는 유별나다. 우리 사회는 학벌과 시험 성적의 권위에 순응하며 그것이 진정한 공정성의 잣대라고 생각한다. 그 밑바탕에 불확실성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가 시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시험이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정된 시험 범위, 예상 가능한 출제경향 내에서 성적은 시험 교재를 얼마나 성실하게 암기했는가로 결정된다. 기출문제를 달달 외우는 이 지루한 과업을 의심 없이 올곧게 밀고 나간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 그리고 이에 따라 보상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학업 성적과 시험 결과를 훼손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건 확실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치러진 시험 결과다.
5개년 계획은 더 이상 없다
“꿀벌이 되지 말고 게릴라가 되어라”
‘블루 Ocean’ 말고 ‘블루 Pond’를
모든 것이 확실하게 통제된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우등생들이 과연 앞날을 이끌어 가는 리더가 될 수 있을까? 게임 도중에 규칙이 바뀌는 것을 참을 수 없으면서 혼돈과 불확실성의 미래를 감내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기 훨씬 전인 2001년에 개리 하멜은 “꿀벌이 되지 말고 게릴라가 돼라”고 말했다.₃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노르만디 상륙작전도, 정부와 기업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인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이제는 없다. 게릴라 대장 같은 수많은 벤처들이 니치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블루 Ocean’이 아니라 ‘블루 Pond’를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인내심과 근성이 아니라
흥분으로 밤을 새우는 젊은이들
인터넷, 스마트폰, SNS, 플랫폼, 공유경제, O2O, 블록체인 등 일련의 혁신이 비주류 괴짜들의 엉뚱한 시도에서 나왔다. 체제 순응적인 꿀벌들로서는 이룰 수 없는 업적이다. 산업의 게릴라들은 불확실성을 즐긴다. 이들은 ‘임전무퇴’, ‘한계돌파’의 구호 아래 핏발 선 눈으로 일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내심과 근성이 아니라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흥분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뿐이다.
7만 년 전 인류는 600~3000명
멸종 위기종이었다
원시시대 인류는 대자연 앞에서 풍전등화였다. 기후변화, 지각변동, 대형 육식동물은 통제불능의 불확실성이었다. 인류는 7만 년 전쯤 600~3000명 정도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₄ 멸종 위기종이었던 셈이다.
21세기의 불확실성 역시 인류를 위협하고 있으나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인류의 힘이 성장한 결과 발생한 불확실성이다. 환경오염, 전쟁, 갈등으로 인한 자멸의 위험도 크지만, 인류의 역량을 선용할 경우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 즉 긍정적 불확실성도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다행성 거주종, 즉 지구와 화성을 거느린 인류를 꿈꾸는 일론 머스크의 비전은 그 한 예다.
불확실성을 회피한다면 개인이든 국가든 그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노력 대비 성과가 완벽하게 검증된, 완전한 무위험 자산에만 투자하겠다는 태도로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불확실성은 개인들이 기피할수록
사회 전체적으론 커진다
개인들이 불확실성을 기피하고 밀어내면, 불확실성은 점점 더 증폭된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배를 타 본 적이 없는 조조 군의 화북 병사들은 뱃멀미로 고생한다. 조조는 모든 배들을 쇠사슬로 묶어서 흔들림을 최소화한다. 병사들은 안정감을 얻었으나 오나라 사령관 주유의 화공이 개시된다. 한 척의 배에만 불이 붙어도 모든 배에 불이 옮겨붙어 조조군은 궤멸한다.
개개인의 불확실성 기피로 한국경제 전체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다. 미래 경제는 기술과 수요 모든 면에서 끝없이 분화한다. 기회는 크기가 작아지고 분산된다. 개인들의 작은 모험이 곳곳에서 시도되어야 할 때 우리는 핵심 노동시장, 전문직, 공직,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안전하고 확실한 답을 향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플랫폼 기술의 발달로 창업의 위험은 줄어들고 있는데, 경제 전체가 기존 산업과 기술에 고착되어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심각한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 회피’라는 트라우마
그 내면에 흐르는 변화의 물길
한국의 불확실성 트라우마는 근대화 시기의 경험에서 기원하지만 이를 겪어보지도 않은 이후 세대들에게까지 유전되고 있다. 아마도 압축성장 이후 지속된 경쟁의 압력이 원인일 것이다. 부족함 없이 구김살 없이 자라났으리라고 여겼던 신세대조차 마찬가지다. 저성장과 양극화 속에서 가중되는 입시경쟁, 취업난의 무게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끈질긴 유전 속에서도 상처는 아물어 간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내적 충동이 자라난다. 얼음으로 뒤덮인 강바닥에 물이 다시 흐른다. 소수이긴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명문대나 공무원직을 박차고 나오는 ‘커밍아웃’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변화는 막을 수 없다.
큰 정책으로 세상 안 바뀐다
불확실성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험을 축적해 가야
얼음이 녹을 때처럼 사람들의 변화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프레임이다. 삶이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한 누구나 안전을 희구한다. 불안한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말라, 위험하지 않으니 도전하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그런 말을 해봤자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각자의 성향을 존중하되, 불확실성 선택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경험을 기다려야 한다. 도전이 객기도 희생도 아닌 합리적 선택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인센티브의 구조가 문제다. 그러나 인센티브를 건드리는 것은 곧 한 사회의 분배 메커니즘을 건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 개조에 해당되는 큰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일을 꼬이게 할 뿐이다. 서울대 지방 이전, 토지공개념, 부유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등을 이룬다고 학벌과 부의 대물림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보다 지혜롭고 무엇보다 느린 접근이 요구된다.
확실성에 비용을 부과하고
불확실성에 인센티브 줘야
확실성의 일방적 선호 풍조를 바꾸려면 확실성이 비용을 수반한다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도 가치를 지닌다는 신호가 지속적으로 발신되어야 한다. 현재 직업 시장에서 공직은 기업체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무조건 좋다. 그렇게 핵심 시장과 주변 시장이 양극화되어 있고 중간 영역이 없다. 인재들의 분포는, 비록 불확실성 회피 쪽으로 쏠려 있긴 하지만, 도전을 선호하는 인재들이 차츰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취적 인재들 역시 모든 면에서 우월한 핵심 노동시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고, 핵심 시장은 구직난, 주변부 시장은 구인난의 이중고가 증폭된다.
비정규직에 업무 기회와 보너스를 확대해야
직업에 선호가 있는 한 이것은 단번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공직 또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 매력이 너무 크다면 그 대신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 또는 급여나 보너스를 조정함으로써 치우침을 완화한다. 근무지나 기타 복리후생 항목의 조절까지 균형을 회복하는 다양한 ‘시장 설계’가 가능하다.₅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성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원칙을 확립해 가는 것이다. 반대로 비정규직의 경우 근무지를 보장하거나 도전적인 업무 기회와 보너스를 확대하는 등 실질적 유인을 강화한다. 이 모든 것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너무 요란하지 않게 “작은 생선을 굽듯이”₆ 이루어져야 한다.
바람직한 모습은 노동시장과 인재들의 성향 모두가 정상적인 대칭 분포를 이루는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중간 영역이 만들어져야 한다.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도, 모두가 기피하는 직업도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스타트업이나 유튜브 크리에이터, 메이커스 등 다양한 직업들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브리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이 핵심 시장과 주변 시장 간의 중간지대를 두텁게 만들면 인재들에게도 성향에 따른 선택 대안이 풍부해진다. 특정 직업을 둘러싼 과당 경쟁은 줄어들고 서로에게 어울리는 짝짓기(matching)가 가능해진다. 이것은 트라우마 속에서도 꾸준히 자라난 청년층의 도전 정신에 돌파구를 마련해 준다.
우리 청년들이
정답이 주어진 시험에서
고득점 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도록 만들어야
이제 더 이상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도, 급여나 근무환경도 핵심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꿈꾸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안정된 직장보다는 도전적인 직장이 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무게 중심이 바뀜에 따라 전체 인재 풀에서 도전적 성향의 분포가 점차 늘어난다. 근대화 이래 고착된 불확실성의 트라우마로부터 서서히 빠져나오는 것이다.
한국인은 항상 학습의욕이 넘치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산업과 기술의 패러다임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최대의 관건은 불확실성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정답이 주어진 시험에서, 고득점을 위해 청년들의 소중한 에너지가 교실과 시험장에서 낭비되는 사태를 더 이상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₁ 비교문화 전문가 홉스테드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반적으로 불확실성 회피 국가로 분류되며 불확실성 기피 정도가 동남아 국가들보다 더 심한 것으로 평가된다. (Geert H Hofstede, Gert Jan Hofstede, Michael Minkov, 2010, Cultures and organizations: software of the mind: intercultural cooperation and its importance for survival, McGraw-Hill, p.218)
₂ 허영만, 2006, <타짜> 1부, 랜덤하우스
₃ Gary Hamel, 2002, Leading the Revolution: How to Thrive in Turbulent Times by Making Innovation a Way of Life, A Plume Book
₄ 홍익희, 2017.9.28, “7만년 전 멸종위기에 처했던 인류는 어떻게 전세계로 뻗어나갔을까?”, Pub.Chosun.com
₅ Alvin E. Roth, 2015, Who Gets What — and Why: The New Economics of Matchmaking and Market Design, Houghton Mifflin Harcourt
₆ “治大國, 若烹小鮮(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노자, 남만성 역, 2015, 노자도덕경, 을유문화사, 6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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