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영국 BP와 스위스 머큐리아는 왜 위안貨를 받고 中에 원유를 팔까?

김연규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0.08.04

한국석유공사가 개발한 UAE 할리바 유전 (출처: 한국석유공사)

中 2년 전 상하이에 원유선물시장 개설
위안화 국제화 위한 준비 작업

2018년 3월 상하이에 세계에서 3번째 원유 선물시장(INE: the Shanghai International Energy Exchange)이 문을 열었다. 국제 원유 선물거래소로서는 3번째로서 영국의 대륙 간 거래소(ICE: Intercontinental Exchange), 미국의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이어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이다. 영국 ICE에서 거래되는 북해산 원유를 브렌트油, 뉴욕 NYMEX에서 거래되는 원유를 텍사스 중질油(WTI)라고 부른다. 브렌트유와 텍사스 중질유는 세계의 대표적인 양대 국제유가 지표로서 서로 상호 연결은 되어 있지만 별개로 작동된다. 브렌트유는 전 세계 석유 공급의 약 70%를 차지한다. 브렌트유 가격은 세계의 수요 공급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WTI는 세계 석유 공급의 약 30%를 차지하기 때문에 WTI 가격은 미국 내부의 수요 공급을 반영한다.

ICE와 NYMEX 모두 자체 저장시설, 선물시장을 가지고 있다. NYMEX와 연결된 공급 허브로서 오클라호마 쿠싱(Cushing)이라는 장소에 7600만 배럴의 저장 시설을 가지고 있다. 브렌트유 거래와 연계된 저장시설은 해상 수퍼탱커들이다. 육상 시설보다는 훨씬 대규모의 유동성에 대처할 수 있는 저장시설을 가지고 있다. 최대 2억 배럴로 추정된다. 브렌트유는 물리적인 인도 없이 금융결제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2018년 당시 INE 창설에 대한 세계 언론의 즉각적 반응은 중국이 달러 기축통화를 약화시키고 위안貨의 국제화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위안화 국제화란 위안화가 세계 경제에서 지급결제 및 가치저장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석유시장과 석유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 (출처: 로이터)

달러패권 닥친 세 번의 위기

달러 기축통화는 미국의 세계 석유시장 지배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20세기 미국 패권의 비밀이 달러 기축통화에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달러 패권이 석유 지배에서 나온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동안 미국 패권질서의 양대 기둥은 달러 기축통화와 석유 지배였다. 비밀은 전 세계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엄청난 원유 규모에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 모든 석유 거래가 달러로 결제되는 특권을 누렸다.

금융과 무역 상품 거래에서 결제수단과 외환 가치저장 수단의 독점적 지위에서 오는 달러 패권으로 미국이 누린 ‘어마어마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s)’은 그동안 몇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 위기는 에너지 위기와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이 일어난 1970년대였다. 미국은 이때 이른바 사우디와의 밀약 등을 통해 모든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는 ‘달러-석유 결제 체제(페트로-달러 체제)’ 도입으로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위기는 고유가와 자원민족주의, 에너지 고갈 전망 등으로 한정된 에너지를 둘러싼 국가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다시 전개된 2000년대 초에 찾아왔다. 미국은 당시 중동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낸 소위 ‘테러와의 전쟁(terror war)’을 수행하였는데 사실 당시의 전쟁들은 달러 패권 특히 달러-석유 결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화폐전쟁(currency war)’이었다.

세 번째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금융과 상품 무역에서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다극화(multipolar)’하고 위안화 비중을 확대하려는 시도에서 오는 것이었다. 금융거래는 아직 미미하지만 상품 거래에서의 위안화 비중은 크게 늘었다. 2015년 기준으로 1조 1000억 달러인 중국의 총 무역 결제액 가운데 30% 정도가 위안화였다(Doshi 2020). 중국의 달러 패권 약화를 위한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거래 규모가 큰 석유 수입은 아직 위안화 결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8년 3월 개설된 INE에 공급되는 원유는 주로 러시아와 앙골라 등으로부터의 소규모에 불과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3단계 전략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3단계 계획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는 아시아 역내 국가가 위안화를 사용하게 하는 1단계, 2018년부터 2027년까지는 위안화가 아시아 역내 기축통화로 될 수 있도록 하는 2단계, 마지막 3단계는 2028년 이후 10년 동안 위안화가 미국 달러와 같은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게 하는 것이다(김정식 2020).

2015~2016년 무렵 위안화 국제화의 성과가 가시화되는 움직임들이 있었다. 2015년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프랑스 중앙은행, 유럽중앙은행(ECB)이 연달아 외환보유액 구성 통화에 위안화를 포함시켰다. 파키스탄 중앙은행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교역을 늘리기 위해 무역 결제 수단으로 위안화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 사업들에도 위안화가 주요 통화로 사용됨으로써 위안화 국제화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6년 10월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달러화, 파운드화, 엔화, 유로화에 이어 위안화를 편입했다.

2017~2018 2년 연속
위안화 결제 비중 줄어

그러나 2017-2018년 국제 무역과 결제 시장에서 중국 위안화가 사용되는 비중이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시장에서는 위안화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수단이 될 것이란 기대가 점점 꺾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에너지 시장 자체에도 근본적 변화가 있었다. 미국이 셰일혁명 성공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주요 석유 수입국에서 석유 수입을 중단하거나 대폭 줄이게 되었다. 대신 중국이 주요 수입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제 ‘페트로-달러 체제’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은 기축통화 지위를 바로 개입시켰다. 미국의 힘은 ‘제도’에 있다. 달러를 무기로 쓸 수 있게 한 제도는 벨기에에 본부를 둔 ‘국제은행間통신협회(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라는 기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SWIFT는 전 세계 금융거래 정보의 ‘하이웨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달러 결제 체제를 우회해 중국과 석유 거래를 하려는 국가들을 파악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는 것이다(Doshi 2020). SWIFT에 대한 대항마로 유럽의 유로화 결제 시스템(INSTEX), 중국의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CIPS) 등이 있지만 단순 결제시스템에 그치고 통신 기능을 갖추지 못해 미국의 SWIFT를 넘을 수 없었다.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중국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2019년 현재 대다수의 분석가들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아직 견고하며 특히 중국이 자본시장 개방 없이 위안화를 국제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달러 기축통화의 조기 약화와 위안화 기축통화 가능성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소수 견해’를 피력하는 대표적인 인사가 싱가포르 UN 대사를 지내고 싱가포르 국립대학 공공정책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이 대학 아시아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있는 기쇼 마부바니(Kishore Mahbubani)이다. 마부바니는 달러 기축통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의 위안화가 아니라 미국의 외교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수천 건의 금융제재를 남발함으로써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점점 시장과 다른 국가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주장한다.

COVID-19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中

달러 패권과 석유 결제 체제는 2020년 COVID-19 사태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2009~2019년 동안의 위안화 국제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2018년 3월 개설된 상하이 국제에너지거래소도 아직은 충분한 거래량을 달성하지 못했다.

2020년 3월 이후 COVID-19로 인한 세계적 원유 수요 파괴로 ICE와 NYMEX 중심의 석유 공급망이 일시적이나마 붕괴되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2020년 4월 20일에는 미국 텍사스 중질유(WTI) 선물가격이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현재로서는 세계 자원 개발 산업의 1/3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제시설도 문을 닫게 된다. 사우디의 경우 GDP의 60% 이상이 석유에 달렸고, 이란 이라크 카타르 쿠웨이트는 그보다 더 심하다. 러시아는 GDP의 3분의 1, 정부 재정의 절반이 석유에서 나온다. 미국도 GDP의 8%가 석유 부문에 의존하는데, 이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다. COVID-19 사태 이후 주요 에너지 생산국들의 사회경제적 붕괴, 정치적 분열, 세력균형의 전환 또한 예측된다.

중국만이 원유 소비량 빠르게 회복

새로운 저유가와 초과공급 상황에서 세계 최대 원유 소비국인 중국만이 빠르게 원유 수요를 회복하고 있다. 2019년 12월 1370만 배럴(13.7 million barrel per day)이던 중국의 하루 원유 수요는 2020년 2월 1000만 배럴로 떨어졌다가 5월 기준으로 1200만 배럴까지 회복되었다.

중국과 아시아 석유 시장을 두고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셰일 플레이어들 간의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고 있고 중국이 이 틈을 타 위안화 결제 거래를 늘려가려 하고 있다. 초유의 글로벌 원유 시장 침체기에도 중국 정부가 최근 대규모로 원유를 구매하는 이유는 전략 비축유 확보 차원이다. 2020년 초 현재 중국의 전략 비축유 규모는 11억 5000만 배럴(1.15 billion barrels)로 원유 수요 기준 83일분으로 보통 90일분을 비축해 놓는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적은 양이다. 미중 경쟁 상황을 감안하면 90일분 이상을 비축해 놓으려고 할 것이다.

2020년 7월 BP는 300만 배럴의 이라크 경질유(Iraqi oil Basra Light)를 위안화 결제를 통해 상하이에너지거래소와 연계된 산동반도의 원유저장 터미널에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BP는 추가로 100만 배럴의 UAE 원유를 공급하였으며, 스위스 트레이더인 머큐리아(Mercuria)도 UAE 원유 각각 100만 배럴 씩 8월과 9월 인도분 선물계약을 위안화 기준으로 하였다.

석유 시장의 근본적 변화인지는
세계 원유 수요 회복 시기에 달려

코로나로 인한 수요 파괴와 초과 공급으로 인한 원유 공급망 변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근본적인 석유 시장 변화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올해 말쯤 백신 개발과 함께 본격적으로 수요가 회복되고 국제유가가 V자 반등을 그릴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미국 정부도 서구 트레이더들의 중국 선물시장 원유 공급을 막기는 힘들다. 미국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해 미국 원유기업들을 위한 구제책을 내놓고 있고, 정부가 초과공급 원유를 사들이고 있어 미국 정부의 원유시장 코로나 대책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COVID-19 이후 달러 패권과 위안화 국제화에 메가톤급 여파를 가져올 것이 바로 디지털 위안화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중국 부상의 절정기에 중국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의 에너지자원 개발-도입과 이를 위한 도로, 철도, 가스관 등 전통 인프라 구축에 많은 재원과 노력을 투입했다. COVID-19 이후의 추세는 비대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이다. 2020년 5월 미국 계간지 Foreign Affairs는 「Could China’s Digital Currency Unseat the Dollar? American Economic and Geopolitical Power Is at Stake」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Kumar & Rosenbach 2020). 저자들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해 2022년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디지털 위안화 결제 방식을 통해 중국에 대규모 원유를 공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미국이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OVID-19가 앞당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그린에너지전환의 시대에 미중 패권 경쟁이 어떻게 변화하고 과연 디지털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지 주시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아프리카로 달려가는 이유

1970년대 미국은 달러 기축통화를 강화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과 석유 결제 체제 합의를 끌어냈다. 여기에는 석유달러 홍수를 유도하기 위해 욤키푸르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서구 국가들 간의 협의체였던 ‘스웨덴 살트셰바덴의 빌데르베르크 그룹 회의체(1973년)’가 있었다. 중국은 위안화 기축통화를 위한 국제연대로서 일대일로 사업을 활용하고 있으며 일대일로의 디지털 버전인 Digital Silk Road(DSR)가 있다. 가장 중요한 국가 그룹은 54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2020년 6월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가 아프리카 국가들을 콕 집어서 미국만큼 아프리카 국가들의 방역을 지원하는 국가가 없다고 말한 이유이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정책을 입안한 전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가 2006년 내놓은 『The Coming China Wars』란 책을 보면 중국이 자원 광물과 식량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 전역을 중국의 제2대륙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트럼프는 집권 전 이 책에 크게 감명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미국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를 공식 정부 문서를 통해 적으로 규정하고 앞으로의 시대를 ‘강대국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이라고 규정한 대목에서 백악관 안보 보좌관 볼튼도 특히 중국의 아프리카 지배를 위협으로 특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김정식. 2020. “디지털 위안화 앞세워 미국 달러화 패권에 도전한다.” 『중앙일보』 02.11
Doshi, Rushi. 2020. “China's Ten-Year Struggle against U.S. Financial Power.” National Bureau of Asia Research (NBR)
Helleiner, Eric & Jonathan Kirshner. (Ed.) 2014. The Great Wall of Money: Power and Politics in China’s International Monetary Relation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Kumar, Aditi & Eric Rosenbach. 2020. “Could China’s Digital Currency Unseat the Dollar? American Economic and Geopolitical Power Is at Stake.” Foreign Affairs, May 20.
Mahbubani, Kishore. 2020. Has China Won? New York: Public Affairs.
Prasad, Eswar S. 2017. Gaining Currency: The Rise of the Renminbi.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 저작권자 ©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콘텐츠 연재물: